안녕하세요! 별집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전명희입니다. 제가 작년 8월부터 한겨레 ESC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칼럼을 통해 3주에 한번 집에 대한 상식을 깨는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제 글이 '나를 위한 집'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는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과 관련된 피겨와 포스터, 옷 등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새로운 시즌과 극장판이 나오면 열심히 챙겨 보는 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전개와 인생을 대하는 캐릭터들의 태도가 쓸데없이 진지하지 않아 좋다. 그중 <심슨 가족>의 오프닝 시퀀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카우치 개그’(couch gag)라는 고유명사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오프닝은 항상 심슨 가족이 갈색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내용 자체는 단순하지만 매회 선보이는 소파를 활용한 개그가 아주 독창적이고 기발해 이를 손꼽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며칠 전 ‘카우치 개그’만을 모아둔 영상 중 아빠인 호머 심슨이 첫눈에 반한 소파를 지금의 집에 들이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담은 오프닝 영상을 보다가, 뜬금없지만 우리 집에 놓인 가구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처음 책상을 만났을 때의 설렘과 단짝 친구처럼 책상과 함께 보냈던 숱한 시간이 떠올랐다. 그런 책상을 한동안 부모님 댁에 방치해두다가 얼마 전에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옮겨왔는데, 문득 가구라는 것이 물리적 수단과 조형 요소를 넘어 인간과 유대감 형성이 가능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비단 나뿐만 아니라 가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전과 확실히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요즘 젊은층을 중심으로 빈티지 조명과 가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실제로 최근 고가의 조명과 의자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인상적인 점은 이들이 단순히 과시를 위한 목적으로 빈티지 가구에 큰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평생 나와 함께할 반려 가구를 찾기 위해 빈티지 숍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유명 브랜드의 비싼 제품으로 집 안을 채우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녹여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원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빈티지 가구를 중고 가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가성비 좋은 새 제품을 주로 선호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의 흐름이 반갑기만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이따금 즐겨 보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유럽 가구와 소품을 수입해 파는 주인공의 직업이 낯설었는데 이제는 제법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빈티지 편집숍은 대부분 미드센추리 시대의 모던한 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잘 알려진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 의자 중에는 알바르 알토,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코르뷔지에 등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것도 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해외의 건축가들은 본인이 설계한 건물에 어울리는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곤 했다. 가구는 인간을 건축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건축의 또 다른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흔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최근에 한 건축가의 사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회의실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 수납선반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건축적인 생김새와 구조미(결구 방식·짜임새)가 돋보이는 게 필시 건축가의 손길을 거친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건축가가 디자인한 목조 가구로, 특히 수납선반은 그대로 크기를 키우면 기둥과 보로 이루어진 라멘구조의 건물이 될 것만 같았다. 건축가의 가구는 건축의 개념을 축약시킨 미니어처 같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위와 같이 가구 자체로 인테리어가 되는 존재감이 확실한 가구들도 있지만 가구의 배치 방법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도 한다. 만약 이사를 앞둔 경우라면, 이사 갈 집이 정해진 뒤 입주하기 전까지의 설레는 시간을 잘 활용해보자. 우선 나에게 필요한 가구를 나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요한 가구의 리스트를 작성했으면 그다음으로 내 생활 패턴과 취향을 고려하여 적절한 가구를 선택한다. 만약 작은 원룸이라면, 좁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해야 하기에 하단부에 수납이 가능한 형태의 침대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깊이감이 있는 가구보다는 키가 큰 가구를 선택해 충분한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 아담한 집일수록 가구 하나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구를 배치하는 게 이상적인데, 예를 들면 식탁과 책상을 따로 두지 않고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큰 테이블만 하나 두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가구의 크기를 확인하여 평면도상에 가구를 배치해본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레이아웃을 가진 원룸이라면, 창문보다는 벽의 긴 변을 따라 침대를 놓아보자. 이렇게 하면 반대편 벽의 긴 변에 수납가구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공간의 낭비가 적다. 집의 비례를 깨트리지 않는 크기의 가구를 잘 선택하여 배치하면 작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내 취향의 공간을 만들 수 있으니 꼭 도전해보길 바란다.
요즘 나에게도 갖고 싶은 가구가 생겼다. 바로 책이 술술 읽힐 것만 같은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다. 따스함이 전해지는 창가 아래 놓인 리클라이너 소파에서 책을 읽으면 너무도 행복할 것 같다. 봄이 오기 전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야지. 아담한 집에서 나와 함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야 할 테니 평소보다 신중하고 까다롭게 공들여 골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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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출처 한겨레
발행일 2022.02.24
안녕하세요! 별집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전명희입니다. 제가 작년 8월부터 한겨레 ESC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칼럼을 통해 3주에 한번 집에 대한 상식을 깨는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제 글이 '나를 위한 집'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는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과 관련된 피겨와 포스터, 옷 등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새로운 시즌과 극장판이 나오면 열심히 챙겨 보는 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전개와 인생을 대하는 캐릭터들의 태도가 쓸데없이 진지하지 않아 좋다. 그중 <심슨 가족>의 오프닝 시퀀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카우치 개그’(couch gag)라는 고유명사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오프닝은 항상 심슨 가족이 갈색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내용 자체는 단순하지만 매회 선보이는 소파를 활용한 개그가 아주 독창적이고 기발해 이를 손꼽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며칠 전 ‘카우치 개그’만을 모아둔 영상 중 아빠인 호머 심슨이 첫눈에 반한 소파를 지금의 집에 들이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담은 오프닝 영상을 보다가, 뜬금없지만 우리 집에 놓인 가구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처음 책상을 만났을 때의 설렘과 단짝 친구처럼 책상과 함께 보냈던 숱한 시간이 떠올랐다. 그런 책상을 한동안 부모님 댁에 방치해두다가 얼마 전에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옮겨왔는데, 문득 가구라는 것이 물리적 수단과 조형 요소를 넘어 인간과 유대감 형성이 가능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비단 나뿐만 아니라 가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전과 확실히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요즘 젊은층을 중심으로 빈티지 조명과 가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실제로 최근 고가의 조명과 의자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인상적인 점은 이들이 단순히 과시를 위한 목적으로 빈티지 가구에 큰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닌 평생 나와 함께할 반려 가구를 찾기 위해 빈티지 숍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유명 브랜드의 비싼 제품으로 집 안을 채우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녹여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원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빈티지 가구를 중고 가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가성비 좋은 새 제품을 주로 선호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의 흐름이 반갑기만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이따금 즐겨 보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유럽 가구와 소품을 수입해 파는 주인공의 직업이 낯설었는데 이제는 제법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빈티지 편집숍은 대부분 미드센추리 시대의 모던한 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잘 알려진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 의자 중에는 알바르 알토,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코르뷔지에 등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것도 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해외의 건축가들은 본인이 설계한 건물에 어울리는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곤 했다. 가구는 인간을 건축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건축의 또 다른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흔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최근에 한 건축가의 사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회의실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 수납선반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건축적인 생김새와 구조미(결구 방식·짜임새)가 돋보이는 게 필시 건축가의 손길을 거친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건축가가 디자인한 목조 가구로, 특히 수납선반은 그대로 크기를 키우면 기둥과 보로 이루어진 라멘구조의 건물이 될 것만 같았다. 건축가의 가구는 건축의 개념을 축약시킨 미니어처 같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위와 같이 가구 자체로 인테리어가 되는 존재감이 확실한 가구들도 있지만 가구의 배치 방법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기도 한다. 만약 이사를 앞둔 경우라면, 이사 갈 집이 정해진 뒤 입주하기 전까지의 설레는 시간을 잘 활용해보자. 우선 나에게 필요한 가구를 나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요한 가구의 리스트를 작성했으면 그다음으로 내 생활 패턴과 취향을 고려하여 적절한 가구를 선택한다. 만약 작은 원룸이라면, 좁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해야 하기에 하단부에 수납이 가능한 형태의 침대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깊이감이 있는 가구보다는 키가 큰 가구를 선택해 충분한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겠다. 아담한 집일수록 가구 하나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구를 배치하는 게 이상적인데, 예를 들면 식탁과 책상을 따로 두지 않고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큰 테이블만 하나 두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가구의 크기를 확인하여 평면도상에 가구를 배치해본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레이아웃을 가진 원룸이라면, 창문보다는 벽의 긴 변을 따라 침대를 놓아보자. 이렇게 하면 반대편 벽의 긴 변에 수납가구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공간의 낭비가 적다. 집의 비례를 깨트리지 않는 크기의 가구를 잘 선택하여 배치하면 작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내 취향의 공간을 만들 수 있으니 꼭 도전해보길 바란다.
요즘 나에게도 갖고 싶은 가구가 생겼다. 바로 책이 술술 읽힐 것만 같은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다. 따스함이 전해지는 창가 아래 놓인 리클라이너 소파에서 책을 읽으면 너무도 행복할 것 같다. 봄이 오기 전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야지. 아담한 집에서 나와 함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야 할 테니 평소보다 신중하고 까다롭게 공들여 골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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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출처 한겨레
발행일 2022.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