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별집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전명희입니다. 제가 작년 8월부터 한겨레 ESC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칼럼을 통해 3주에 한번 집에 대한 상식을 깨는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제 글이 '나를 위한 집'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별집’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공간 감수성을 깨우고자 다양한 공간을 사용자에게 소개하고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개하는 매물 중 상당수는 건축가가 설계하여 지은 주거·업무·상업 공간으로,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몇가지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간접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 간접 조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의 나는 이를 인테리어적인 요소로 치부했을 뿐, 건축가들이 왜 간접 조명을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간 관심 밖이었던 조명에 서서히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조명의 세계가 알고 싶어졌다. 놀라운 건 이런 조명의 세계를 탐닉하려는 자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히 조명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조명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가구 못지않게 빈티지 조명과 고가의 프리미엄 조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은 이미 뜨거웠다.
인터넷에서 찾은 한정된 정보만으로는 조명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결국 책 두권을 집어 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조명을 그저 어둠을 밝히는 단순한 등 기구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늘 밝기와 디자인에만 신경을 썼지 조명을 고르는 과정 속에는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좋은 빛’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조명에 무지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요즘 내 생체리듬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 안의 조명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중이다. 좋은 빛으로 공간을 채우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조명 기구의 외형보다는 좋은 빛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책을 보면서 이전에 내가 우리 집에 감행했던 어설픈 시도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했던, 부모님만 괴롭힌 꼴이 된 그 모험 말이다. 한번은 거실 천장 한가운데 있는 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평소 거실 조명이 어둡다고 느끼셨던 터라 기왕이면 밝고 오래가는 조명으로 교체해야겠다고 생각해 나름 인터넷으로 열심히 엘이디(LED) 조명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리고 목 디스크가 오는 듯한 아픔을 견뎌가며 거실 천장의 조명 설치를 마쳤다. 처음 점등식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 거실이 이렇게 환할 수가 없다며 모두가 새 거실 조명을 반겼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존보다 거실이 밝아진 건 좋았지만 문제는 과도한 눈부심과 이로 인해 눈의 피로도가 상당히 증가해버린 것이었다. 마치 깜깜한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느낌이랄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누구도 거실 천장 등을 켜려 하지 않는다. 그때 천장 한가운데에 효율 높은 놈 하나만 설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적당한 광량의 조명 여러개를 천장 몰딩을 따라 설치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천장 중앙에 설치하는 방등이 높은 효율과 가성비로 균일한 조도를 내는 조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좋은 빛 환경과는 거리가 먼 조명이다. 호텔과 다르게 대부분의 주거 공간은 그 쓰임새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 이렇듯 애초에 사용자를 고려한 조명 설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급자는 방의 천장 한가운데 조명을 설치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누워 있는 사람의 시선과 정면에 위치하지 않도록 침실의 조명만은 플로어 스탠드나 테이블 스탠드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특히 하루 종일 누워 천장을 바라봐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방등은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성인보다 빛에 민감한 아이를 위해 눈부심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간접 조명을 활용해 아이의 시 환경을 보호해주도록 하자.
유명 브랜드에서도 가격대가 높은 제품을 선택했건만 무용지물이 된 거실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음으로는 색온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푸른빛을 띠는 차가운 느낌의 주광색이 싫어 따뜻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전구색 스탠드 조명을 집 안 곳곳에 배치했다. 그런데 준비한 보람도 없이 부모님으로부터 노란색 조명은 침침해서 싫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적응하면 괜찮을 거라고, 사람의 시환경(visual environment)에는 전구색이 더 좋은 거라고 여러번 설득했지만 부모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최근에서야 책을 통해 부모님이 전구색 조명을 불편해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고령자의 경우 동일한 빛 환경이어도 젊은 사람보다 어둡게 느낄 수밖에 없는 과학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나에게 좋다고 해서 그 빛 환경이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언제, 어떤 용도로 해당 공간을 사용할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함부로 타인의 조명에 손을 대지 않으려 한다.
앞서 건축가가 설계하여 지어진 주거 공간엔 반드시 간접 조명이 등장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간접 조명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공간감과 분위기 때문에 조명 계획 때 특히 더 간접 조명이 자주 활용된다. 간접 조명은 시각적 편안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자못 아늑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이 나의 빛의 취향은 무엇인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빛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이런 고민을 거치면서 공간에 빛을 채워나가다 보면, 우리 집이 더 좋은 공간으로 변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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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출처 한겨레
발행일 2022.04.15
안녕하세요! 별집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전명희입니다. 제가 작년 8월부터 한겨레 ESC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칼럼을 통해 3주에 한번 집에 대한 상식을 깨는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제 글이 '나를 위한 집'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별집’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공간 감수성을 깨우고자 다양한 공간을 사용자에게 소개하고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개하는 매물 중 상당수는 건축가가 설계하여 지은 주거·업무·상업 공간으로, 형태는 각기 다르지만 몇가지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간접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 간접 조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의 나는 이를 인테리어적인 요소로 치부했을 뿐, 건축가들이 왜 간접 조명을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간 관심 밖이었던 조명에 서서히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조명의 세계가 알고 싶어졌다. 놀라운 건 이런 조명의 세계를 탐닉하려는 자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히 조명의 전성시대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조명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가구 못지않게 빈티지 조명과 고가의 프리미엄 조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은 이미 뜨거웠다.
인터넷에서 찾은 한정된 정보만으로는 조명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결국 책 두권을 집어 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조명을 그저 어둠을 밝히는 단순한 등 기구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늘 밝기와 디자인에만 신경을 썼지 조명을 고르는 과정 속에는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좋은 빛’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조명에 무지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요즘 내 생체리듬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집 안의 조명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중이다. 좋은 빛으로 공간을 채우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조명 기구의 외형보다는 좋은 빛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책을 보면서 이전에 내가 우리 집에 감행했던 어설픈 시도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했던, 부모님만 괴롭힌 꼴이 된 그 모험 말이다. 한번은 거실 천장 한가운데 있는 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평소 거실 조명이 어둡다고 느끼셨던 터라 기왕이면 밝고 오래가는 조명으로 교체해야겠다고 생각해 나름 인터넷으로 열심히 엘이디(LED) 조명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리고 목 디스크가 오는 듯한 아픔을 견뎌가며 거실 천장의 조명 설치를 마쳤다. 처음 점등식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 거실이 이렇게 환할 수가 없다며 모두가 새 거실 조명을 반겼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존보다 거실이 밝아진 건 좋았지만 문제는 과도한 눈부심과 이로 인해 눈의 피로도가 상당히 증가해버린 것이었다. 마치 깜깜한 방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느낌이랄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누구도 거실 천장 등을 켜려 하지 않는다. 그때 천장 한가운데에 효율 높은 놈 하나만 설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적당한 광량의 조명 여러개를 천장 몰딩을 따라 설치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천장 중앙에 설치하는 방등이 높은 효율과 가성비로 균일한 조도를 내는 조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좋은 빛 환경과는 거리가 먼 조명이다. 호텔과 다르게 대부분의 주거 공간은 그 쓰임새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명을 설치해야 한다. 이렇듯 애초에 사용자를 고려한 조명 설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급자는 방의 천장 한가운데 조명을 설치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누워 있는 사람의 시선과 정면에 위치하지 않도록 침실의 조명만은 플로어 스탠드나 테이블 스탠드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특히 하루 종일 누워 천장을 바라봐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방등은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성인보다 빛에 민감한 아이를 위해 눈부심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간접 조명을 활용해 아이의 시 환경을 보호해주도록 하자.
유명 브랜드에서도 가격대가 높은 제품을 선택했건만 무용지물이 된 거실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음으로는 색온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푸른빛을 띠는 차가운 느낌의 주광색이 싫어 따뜻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전구색 스탠드 조명을 집 안 곳곳에 배치했다. 그런데 준비한 보람도 없이 부모님으로부터 노란색 조명은 침침해서 싫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적응하면 괜찮을 거라고, 사람의 시환경(visual environment)에는 전구색이 더 좋은 거라고 여러번 설득했지만 부모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최근에서야 책을 통해 부모님이 전구색 조명을 불편해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고령자의 경우 동일한 빛 환경이어도 젊은 사람보다 어둡게 느낄 수밖에 없는 과학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나에게 좋다고 해서 그 빛 환경이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언제, 어떤 용도로 해당 공간을 사용할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 함부로 타인의 조명에 손을 대지 않으려 한다.
앞서 건축가가 설계하여 지어진 주거 공간엔 반드시 간접 조명이 등장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간접 조명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공간감과 분위기 때문에 조명 계획 때 특히 더 간접 조명이 자주 활용된다. 간접 조명은 시각적 편안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은 자못 아늑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이 나의 빛의 취향은 무엇인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빛의 형태는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이런 고민을 거치면서 공간에 빛을 채워나가다 보면, 우리 집이 더 좋은 공간으로 변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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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출처 한겨레
발행일 2022.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