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돌멩이레터


돌멩이레터는 분명한 [철학], 철학에 대한 [진정성], 진정성을 표현하는 [탁월함], 탁월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내는 [용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끈기] 가 있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그간 돌멩이레터에서는 '브랜드'에 초점을 맞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앞으로는 [The Brander] 시리즈를 통해 브랜드를 이루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요. 영광스럽게도 [The Brander]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별집이 돌멩이레터 49호에 소개되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즐겁게 인터뷰 진행해 주신 초록, 모과님에게 감사 인사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특별한 돌멩이레터를 전해드립니다. 브랜드를 소개하다 보면 그 브랜드를 만들고 지키는 이의 이야기를 필연적으로 하게 돼요. 때론 사람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경험과 생각, 가치관, 그리고 취향과 감각이 모두 모여 브랜드라는 형태를 띠기도 하죠. 소비를 통해 큰 의미의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가는 소비자도 브랜드의 일부예요. 왜 이런 브랜드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왜 이런 브랜드를 좋아하는지. 지금까지 돌멩이레터가 브랜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들려드렸다면, [The Brander] 시리즈를 통해서는 브랜드를 이루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별집공인중개사사무소'의 전명희 대표님이에요. 별집공인중개사사무소(이하 별집)는 이름 그대로 흔히 말하는 부동산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별집 홈페이지를 볼 때 누구라도 눈을 반짝이게 될 거라는 점이에요. 보통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부동산과 달리, 별집은 온라인과 아이템을 기반으로 해요. 지역에 상관없이 건축가가 설계했거나 누군가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특색있는 주거·업무·상업 공간을 소개하고 있죠. 지금 당장 집을 구하고 있지 않더라도 조금 다르게 난 창문, 조금 더 신경 쓴 조명, 그 공간을 사용할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세심하게 배려한 구조… 거기에 대표님이 직접 취재하고 쓴 짧은 공간 에세이까지 읽다 보면 물결님도 아마 시간 가는 줄 모를 거예요. 


전명희 대표님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어요. 누구보다 건축을 좋아하지만, 설계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건축을 다루되 건축이 아닌 일'을 찾아 다양한 일을 해왔어요. 건설 경영을 더 공부하기도 하고, 도시 재생 사업에 참여하기도 하면서요. 그러다 도쿄R부동산을 알게 되며 본격적으로 중개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도쿄R부동산은 낡은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거나 그 밖에 주거, 지역을 활성화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치는 일본의 온라인 부동산 중개 서비스인데요. R부동산 대표를 찾아 무작정 일본행 티켓을 끊었고, 이 일을 하고 싶다면 우선 ‘업계에서 직접 일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곧바로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죠. 업계의 현실적인 면면과 문제점, 개선점을 몸소 체험하며 꼼꼼히 확인한 전명희 대표님은 약 2년 뒤 드디어 자신만의 브랜드인 ‘별집공인중개사사무소'를 세상에 선보였어요.


별집이 꾸준히 던지는 키워드는 '공간 감수성'이에요. 알게 모르게 사람과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을 조금 더 기민하게 감각하고 교감할 수 있도록 공간 감수성을 깨우는 것이 별집 그리고 전명희 대표님의 목표입니다. 공인중개사가 공식적인 직업이지만, 전명희 대표님은 부동산 중개업만 할 생각은 없어요. 공간을 소개하는 게 좋아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재밌는 일, 사람들의 공간 감수성을 깨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계속 시도할 거라고 해요. 별집을 보며 느꼈던 따스함, 유쾌함, 꼼꼼함, 대담함을 압축시켜놓은 것 같았던 사람. 전명희 대표님과의 대화를 오늘 물결님께 전해드립니다. 집과 공간을 사랑하는 대표님이 애용하는 또 다른 브랜드 이야기도 놓치지 말고 살펴보세요!



º Interview º 


Q. 일명 '중개사사무소' 별집, 하지만 하는 일은 다른 부동산과 사뭇 다를 것 같아요. 매물을 찾는 것부터 계약을 완료하기까지 별집 업무의 사이클 하나를 쭉 소개해주세요.


시작은 수집이에요. 건축가분들의 SNS나 홈페이지를 보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팔로업하죠.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것 같으면 연락을 취해요. 다른 방법은 건축주나 건축가에게 뉴스레터를 보내 반대로 저희를 알리는 거예요. 작년부터는 지인에게 소개받거나 SNS, 혹은 기사를 보고 ‘저희 집 한번 봐주시겠어요' 하고 직접 연락이 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그다음은 무조건 현장에 나가요. 이 과정을 저는 ‘취재'라고 부르는데, 단순히 사진만 찍고 오는 게 아니라 건축가나 건축주를 만나 임대료는 어떻게 할지, 어떤 사람이 들어왔으면 좋겠는지, 공간에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의도로 설계했는지 등 매물에 관해 거의 모든 걸 조사하기 때문이에요. 미팅이 끝나면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을 가져요. 촬영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잠시나마 그곳에서 지낸다고 상상하고 공간을 하나하나 느껴보는 거죠. 이 공간은 이런 부분이 특별하네? 빛이 이때는 이렇게 들어오는구나, 여기는 이렇게 활용할 수 있겠다 하면서요. 

 

현장에 다녀오면 먼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곧 이런 공간이 확보될 거라는 걸 간단히 공유하고 사진을 정리해요. 다녀온 동네와 공간에 관한 짧은 글도 씁니다. 은근히 시간이 많이 드는 단계 중 하나예요. 매물에 관한 정보까지 모두 정리되면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뉴스레터 순서로 광고해요. 별집은 특정 지역을 클릭하면 노출되는 다른 곳과 다르게, 애초에 모르면 찾기 어려운 부동산이잖아요.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부동산 광고 플랫폼에도 광고하고 있어요. 다음은 비슷해요. 공간을 보여드리고 계약을 진행하는 식이에요.


Q. 이렇게 들으니 별집이 하는 일은 중개라기보다 일종의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공간을 글과 사진, 영상으로 남기는 게 보통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맞아요. 사진 찍는 데만 몇 시간 넘게 걸리기도 하고 고르는 데에도 만만찮은 공수가 들어요. 좋은 공간을 정직한 시선으로 소개하는 게 별집의 철학이거든요. 실제보다 더 넓게, 더 밝게 보이는 건 원하지 않아요. 또 저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글 쓰는 데도 새벽과 아침 시간을 부지런히 할애해야 해요. 다른 부동산과 달리 매물을 수집하고, 취재하고, 정리하는 앞 세 단계가 더 있는 셈이죠. 어떻게 보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공간을 중개하는 게 아니라 '소개'하려면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살아보기 전 그 공간을 파악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있어요. 어차피 정량적인 부분은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성적인 것들, 분위기를 전달하는 거예요. 막상 임차인과 현장에서 만나면 방음은 잘 되는지, 채광은 어떤지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분위기 얘기는 꺼낼 시간도 없어요. 대신 제가 기록한 사진과 글을 보고 오는 것과 그냥 오는 건 조금 다르다고 믿어요. '부동산 업자에게 휘둘리지 않겠어, 이 집의 흠집을 찾고 말겠어.' 이런 마음으로 집을 보면 그 매물을 선택한다고 해도 행복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잠깐 쓰고 버릴 물건도 아니고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할 공간인데 말이에요. 별집을 찾아오는 분들이 제 글과 사진을 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공간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결국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어요. 이런 정직함, 성실함이 브랜드의 신뢰와도 이어지는 것 같고요. 


타고나길 그런 성격이기도 해요. 어릴 때도 숙제 꼬박꼬박 잘하고 준비물 잘 챙겨가는 그런 학생이었어요. (웃음) 뭘 하나 하면 그냥 대충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제 성격을 떠나서 무슨 일이든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걸 이 일을 하면서 더 많이 느껴요. 진정성이 없으면 금방 사라질 것 같아요. 제가 쓰는 글, 올리는 사진, 행동 하나하나가 신뢰를 얻기 위해 계획적으로 이뤄진 건 아니에요.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렇게 한 거죠. 그런데 이게 고객 한 분 한 분에게 진정성이 되어 닿더라고요. 집을 구하려는 고객은 물론이고, 매도·임대인 분 중에서도 로컬 부동산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지점이 있어 별집을 찾아오시곤 해요. 정책이나 시장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다 보니, 별집이 만능 해결사가 되진 못하지만 최대한 고객의 고민을 들어주고 적극적으로 같이 해결해나가려고 해요. '별집은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해줄 것 같아, 별집에 맡기면 안심이 돼.' 이런 이야기를 듣는 부동산이 되고 싶어요. 


Q. 별집을 찾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문득 궁금해져요. 아무래도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조금 높을 수밖에 없을 텐데 임차인들의 반응은 어떤지도 알고 싶고요.


보통 2, 30대 1-2인 가구 분들이 많이 찾아주세요. 공통적으로 공간에 대한 애정이나 시선이 남다른 분들이란 느낌이 들어요. 사실 시세가 조금 높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주변보다 터무니없이 높게 내놓을 순 없는데요. 공간을 둘러보고 적절한 범위 안에서 '이 정도는 내가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얻게 될 만족감이 훨씬 크겠다'라고 판단하는 분들이 결국 별집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음악이나 크리에이티브한 활동을 하는 분도 종종 있어요. 그중 한 분은 다른 부동산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집을 구하는 데 조금 지쳐계셨어요. 그러다 저희를 통해 집 두 곳을 보셨고, 서비스에 만족해 어떤 집이든 별집에서 집을 구해야겠다 싶으셨대요. 단순히 생활할 공간이 아니라 음악 작업도 하고 유튜브에 올릴 커버 영상 등 촬영도 해야 해서 그런 부분까지 유심히 보고 집을 고르셨죠. 최근에 펀딩으로 앨범을 내셔서 저도 참여를 했는데, 먼저 알아줘서 고맙다며 직접 앨범을 전해주시기도 했어요. 계약 이후에도 이렇게 고객분들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하며 지내곤 하는데요. 제가 큐레이팅한 집이나 공간이 고객분들의 일상이 되어 SNS에 올라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 좋아요. 또 재밌는 점은, 계약을 한 건 아니지만 별집이 소개하는 매물을 보고 동기부여가 된다는 분도 많아요. 열심히 벌어서 꼭 별집에서 집을 구하고 싶다고요. (웃음)


Q.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좋은 집을 찾는 일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일을 별집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명확한 기준을 세우긴 어렵겠지만, 별집이 생각하는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집을 볼 때 '여기는 꼭 소개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나요?


기본적으로 건물의 품질이 좋아야 해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갖춰져야 그다음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창호는 비싼 자재 중 하나인데, 초기 비용을 줄이겠다고 저렴한 창호를 쓰면 장기적으로는 결국 품질에 문제가 생겨요. 결로가 생기거나 집이 너무 추워져서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경우도 있죠. 처음부터 잘 지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도 집의 품질을 유지하기에 훨씬 편해요. 그럼에도 건물은 결국 노후화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중요한 게 바로 사람이에요. 건물의 주인이 얼마나 건물에 애정을 가지고 잘 관리하는지가 건물의 장기적인 품질을 결정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품질이 좋다'는 말 안에는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셈이에요. 


매물을 고를 때 제일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다양성이에요.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집을 보지는 않아요. 다만 다양한 집을 보는 거죠.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은 잘 살펴보면 필연적으로 공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남아있거든요. 그런 사소한 차이가 제 눈에 보이면 그때부터 너무 신나요. 막 빨리 현장에 가보고 싶고, 얼른 소개하고 싶고 그렇죠. 결국 저라는 사람의 취향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이 집이 완벽해서 소개하는 게 아니라 제가 생각했을 때 '이런 공간에서도 한번 살아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다양성 측면에서 공간을 큐레이팅하고 있어요.


Q. 집만큼이나 살게 될 동네도 중요하잖아요. '어떤 동네를 보려거든, 그 동네의 크림빵을 먹어봐야 해'라는 일본 드라마 대사가 인상적이었다고요. 대표님만의 크림빵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동네를 볼 때 주로 어떤 풍경을 살펴보나요?


실제로 어떤 가게에 들어가 무언가를 사 먹어보지는 않고요. (웃음) 저는 공간도 그렇고 동네도 그렇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운이나 감정이 주변에 스며든다고 생각해요. 눈으로 보거나 코로 맡을 수 있는, 실체가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제가 현장에 방문할 때는 출퇴근 시간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요, 그냥 동네를 걸어보면 그곳만의 바이브가 직관적으로 느껴져요. 건물의 나이라든지 건물의 높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연령대 이런 풍경을 보죠. 가끔 놀이터 같은 곳이 있으면 놀고 있는 아이들이나 주변에 있는 어르신들을 보기도 하고요. 벽돌 건물이 많은 동네는 특유의 아늑함이 있고, 화단이 잘 가꿔진 동네는 왠지 모를 정겨움이 있어요. 반대로 신도시 같은 곳에서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어려워요.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 골목이 그 골목 같죠. 이건 집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떤 공간은 들어가자마자 나와 잘 맞는 공간이 있고, 그냥 잘해놨네 정도에서 감상이 그치는 공간이 있어요. 


Q. 혹시 너무 이상적인 얘기만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한 적은 없나요? 많은 사람이 좋은 집과 공간을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있죠. 하지만 애초에 별집이 소개하는 공간도 이상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완벽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예전에도 한 얘긴데, 이건희 회장님도 완벽한 공간에서 살 수 없을 거예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말이에요. 어떤 공간이든 양면성이 있어서 그중 나에게 더 의미 있는 쪽을 보고 선택하는 거죠. 지금은 완벽하다고 생각해도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생길 수 있어요. 반대로 선물처럼 발견하게 되는 좋은 점도 있을 거고요. 그런 다양한 양면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나에게 맞는 공간을 찾아가는 게 중요해요. 


이상적으로 모든 게 갖춰진 공간을 찾기보다 '이 공간에서 앞으로 나는 뭘 하게 될까, 어떤 재미나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단점도 있겠지만, 그걸 상쇄할 수 있을 만큼의 장점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런 지점을 찾아내고 또 그걸 선택하며 살다 보면 막연히 꿈꾸는 이상적인 공간과 현실 간의 괴리감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건 동네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인데, 이상적인 동네를 찾으려면 끝도 없어요. 스스로 먼저 동네에 정을 붙이려 노력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죠. 


Q. 일의 이상과 현실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공간처럼 일도 양면성이 있죠. 어떤 점이 주로 힘들고,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뭔가요?


맞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어떻게 매일 행복하겠어요. 행복한 그 순간 빼고 나머지는 다 힘들죠. (웃음) 우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몇 초도 쉬지 못할 만큼 일이 몰리기도 하거든요. 또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임대인이나 고객과 결이 맞지 않지 않거나, 저는 진심을 다했는데 그걸 다르게 오해하는 상황이 생기면 속상하죠. 고객의 요구나 컴플레인을 어느 선까지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이런 부분은 계속 부딪히면서 경험을 쌓고 감각을 키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말씀 해주시거나 응원해주는 분들을 만나면 또다시 힘이 나요.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게 정말 큰 원동력이 되거든요. 한 번은 조금 연세가 있는 고객을 만난 적 있는데, 집을 보여드리고 나니 갑자기 봉투를 주시는 거예요. 여태까지 많은 부동산을 다녔지만 이런 부동산은 처음이라면서요. 현장까지 오는 데 들인 시간과 품을 생각해서 챙겨온 거라며 받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챙겨 오셨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어요. 그 밖에도 새벽부터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는 팝업 행사에 덜컥 초대해주시기도 하는 등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 많아요. 모두 일반 부동산에서 일했다면 절대 겪을 수 없는 사소한 즐거움이죠.


Q. 건축이 아니면서 건축과 가까운 일을 찾아 여기까지 왔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 짧지 않은 길을 돌아왔죠. 지금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혹은 걸어가려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도 아직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지만, 가끔 제가 하는 일을 보고 채용 계획이 있는지 혹은 비슷한 비즈니스를 해도 될지 여쭤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실무 경험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하시더라고요. 구상이나 기획 단계에서는 완벽하게 준비해서 시작하면 뭐든 다 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기본적으로는 본인이 하려고 하는 일의 생태계는 파악해야 한다고 봐요. 그 분야에 뛰어들어서 실무를 해보고 업계 상황이 어떤지 아는 게 먼저예요. 그리고 처음부터 완벽한 서비스를 선보이려 준비 시간을 너무 오래 갖는 것보다 일단 해보면서 조금씩 고쳐나가고, 안정기에 들어서면 다시 다른 시도를 해보고 하는 식으로 접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른 하나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앞서 얘기했지만, 사업을 하면 즐거운 시간보다 즐겁지 않은 시간이 사실 더 많아요.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으니 불안할 때도 많고요. 그럴 때 고객의 좋은 피드백 같은 외부 원동력만큼이나 스스로 확신을 가지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어떻게 보면 직관이나 감각의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냥 내 생각대로 추진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어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돌이켜 보면 뭘 해야 할지 몰랐던 20대, 30대 초반에도 저는 똑같이 불안했어요. 그런데 그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지’하는 식의 막연한 불안이 지배적이었다면, 지금 느끼는 불안은 조금 달라요. 뭘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기 때문에 그 불안감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해요. 자기 확신이 있으니까요. 


Q. 결정을 내려야 할 땐 자신을 믿고 대담하게 밀고 나가는 편인 것 같아요. 직관과 추진력이 좋은 느낌이에요. 다른 이에게 소개할 집이 아닌 대표님의 집을 고를 땐 어떤지 궁금해요.


저는 구옥이나 오래된 공간을 좋아해요. 지금 살고 있는 곳도 30년 넘은 빌라인데요. 이 집을 골랐을 때도 특별한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고,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안정감, 편안함이 있었어요. 대신 추위를 많이 타서 집을 볼 때 창호는 유심히 살피는 편이에요. 집을 큐레이션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제가 살 집도 까다롭게 고를 것 같겠지만, 세 군데 이상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후보를 놓고 비교 분석하는 성격은 아니라서요. 언뜻 보면 즉흥적으로 보일 것 같은데, 저는 이것도 제 무수한 경험에 의해 쌓인 데이터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완벽한 집은 어차피 없으니 적당한 집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 집을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건 제 나름이니까요. 그나마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독특한 구조가 있는지를 살폈어요. 여기서 말하는 구조는 단순히 집의 모양, 평면만 말하는 게 아니라 바닥의 높낮이나 천장고, 창문의 위치나 크기 등을 모두 포함해요. 보통 집을 보러 가면 인테리어를 많이들 보잖아요. 그거 말고도 구조를 살펴보면 볼 게 많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요. 집의 구조가 삶에 영향을 되게 많이 미치거든요. 


Q. 마지막으로, 지금 집 혹은 별집 사무실의 구조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나요? 전엔 몰랐지만 공간을 통해 새로 발견하는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집이 1.5층 레벨에 있는 1층이에요. 맞은 편엔 초등학교가 있어서 창밖으로 초등학교 담벼락이 보이죠. 집을 구하게 되면 창밖으로 녹색이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담벼락에 어린왕자 시리즈가 벽화와 함께 약간의 조경이 되어 있어서 그 바람이 현실이 되었어요. 매일 달라지는 풍경을 보며 '나는 이렇게 사계절을 볼 수 있는 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새삼 느껴요. 또 이 집에 살면서 알게 된 의외의 발견은 아이들 왁자지껄한 소리, 동네 어르신분들이 지나가며 얘기하는 소리 등이 저에게 소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나는 소리들이 듣기 좋더라고요. 저는 평생 제가 소리에 예민하기만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요즘은 집에 드는 빛과 그림자를 관찰하고 영상으로 남기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어요. 

 

사무실의 경우, 예전의 종로 사무실도 정말 좋았지만 한옥을 경험해보고 싶어 이사를 결심했어요. 한옥의 구조 하면 또 마당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사실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잎이 엄청나게 떨어져요. 볼 때마다 관리하고 쓸어줘야 하는데, 어느 순간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당을 쓰는 게 제 루틴이 됐어요. 몰랐는데 그렇게 마당을 쓸면 마음이 비워진다고 해야 할까요. 스트레스가 풀리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내부 공간 자체는 심플한 네모 박스지만, 한옥 특유의 천장이나 창밖으로 보이는 대문과 마당과 같은 느낌이 좋아요. 이런 크고 작은 구조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º  brander's BRAND º 


한아조  hanahzo

"액체보다 고체비누가 좋아요.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 집과 저희 집이 아파트 같은 층, 바로 옆 호였어요. 그래서 맨발로도 왔다 갔다 하곤 했는데, 할머니께서 엄청 깔끔한 편이었거든요. 할머니 집 화장실에 가면 항상 비누가 정갈하게 딱 놓여 있었어요. 그런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펌프질해서 손을 씻는 건 어쩐지 너무 간단한 일인 것 같고, 비누를 손으로 들고 만지는 과정이 좋아요. 녹아서 지저분해지는 것도 저는 상관없어요. 한아조는 예전에 편집숍에 갔다가 그램 단위로 팔고 있는 걸 보고 알게 된 브랜드인데, 가격도 저렴하고 성분도 순해서 너무 잘 쓰고 있어요.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시각적으로도 기분이 좋고, 비누 특유의 은은한 냄새도 좋아요."


Editor's comments 

한아조는 '지금, 오늘, 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는 비누 브랜드예요. 돌멩이레터도 소개한 적 있죠. 대표님은 테라조 비누를 쓰고 있어요. 테라조는 유리나 대리석 등 작은 조각은 백색 시멘트와 섞어 만든 건축 인테리어 자재인데요. 이 원리 그대로 남겨진 비누 조각을 모아 한아조만의 방식으로 재탄생시킨 비누가 바로 테라조 비누예요. 알록달록한 색감과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이즈니버터  Beurre d'Isigny

"같은 음식으로 연달아 끼니를 해결하는 걸 잘 못해요. 그래서 밥을 한 번 먹으면 다음은 빵을 먹거나 하게 돼요. 사실 빵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특히 하드계열 빵을 좋아해서, 집에서 바게트를 만들어 먹고 싶은 마음에 제빵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바게트에 생버터 발라 먹는 게 낙이라 버터는 저희 집에 항상 있어야 하는 재료예요. 이것도 어릴 적 얘기를 하게 되는데, 고모가 미군 관련 회사에서 일하셨대요. 본인도 일에 자부심이 있으셨고, 워커힐 호텔 같은 곳에 종종 저를 데려가기도 하셨는데 그때 먹었던 식전 빵과 버터의 맛을 잊을 수 없더라고요. 그 맛을 찾으려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지금까지는 이즈니 버터가 제일 고소하고 뒤에 남는 맛도 깔끔해서 애용하고 있어요."


Editor's comments 

버터는 크게 발효버터와 프레쉬버터로 나뉘어요. 젖산균을 넣어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렵지만, 풍미가 뛰어난 버터가 바로 발효버터(고메버터)인데요. 그중에서도 이즈니 버터는 프랑스 노르망디 이즈니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드러운 크림 식감의 버터예요. 비교적 노란빛을 띠고 고소하면서도 특유의 산미가 있어 느끼함이 덜한 편에 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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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초록

사진 초록, 모과


발행  돌멩이레터 

발행일  202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