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별집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전명희입니다. 제가 올해 8월부터 한겨례 ESC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칼럼을 통해 3주에 한번 집에 대한 상식을 깨는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제 글이 '나를 위한 집'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공교롭게 이전에 살던 집도 새로 이사 온 집도 모두 1층이다. 이전 집은 건물 입구에서 보면 1층이지만 반대편에서는 2층이 되는 구조였고, 이번에 이사한 집은 지층이 있어 반 층 정도 올라간 높이의 1층이다. 두곳 모두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지면에 맞닿아 있는 1층은 아니다. 하지만 집을 구할 때 특별히 층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한국에서 1층은 주거용으로 그리 선호되는 층이 아니다. 같은 저층이더라도 1층은 매번 선택지에서 제외되기 일쑤. 방범과 프라이버시, 채광, 외부 소음에 취약하다는 점 때문에, 또는 고층에서만 즐길 수 있는 전망이 없기 때문에 1층은 높은 층보다 인기가 없다. 그런데 직접 1층에 살아보니 나쁘지 않더라.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 내의 최고가를 1층이 차지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코로나19를 등에 업고 1층이 곧 새로운 로열층으로 등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보면 1층이야말로 가장 희소성 있는 층이 아닐까?


1층에서만 느끼는 희열의 순간이 있다. 늦은 밤 실수로 무언가를 떨어뜨리거나 일명 발망치라 불리는 쿵쿵 소리를 내게 되었을 때다. ‘아파트 키즈’로 자라나 어디를 가든 발뒤꿈치로 바닥을 찧지 않도록 신경 써서 걷는 게 몸에 배었다. 오랜 기간을 층간 소음의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 긴장하며 살다가 그럴 필요가 없음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아파트 4층에 살 때의 일이다. 한밤중에 로션 뚜껑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금세 멈출 줄 알았던 뚜껑이 또르르 소리를 내며 거실 바닥을 하염없이 구르는 것이 아닌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뚜껑을 보며 정말 기겁을 했다. 로션 뚜껑, 그깟 게 뭐라고. 1층에 살면 그런 일로 자책할 일이 없다. 물론 아무리 1층이라고 해도 너무 심한 소음과 진동은 위층으로 전달될 수 있으니 공동주택살이에서 소음을 줄이려는 노력은 필수다.


1층은 전망이란 게 없을 줄 알았는데 1층에서만 즐길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사실 또한 살아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이전에 살던 집엔 1층에만 주어지는 서비스 면적이 있었다. 건설사들은 1층을 특화하려 독립적인 정원이나 테라스를 평면에 서비스 공간으로 제공하곤 한다. 자칭 식물 전문가인 오빠 덕에 우리 집 테라스는 흔치 않은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식물 실험실이 되었는데, 가끔 놀러 오던 부모님의 반려견이 가장 좋아하는 외부 공간이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방울이 테라스에서 타닥타닥 튀어 오르는 소리와 모양을 듣고 보는 것도 좋았다. 그런 날엔 스탠드 조명 하나 켜고 빗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독서 삼매경에 빠지면 더할 나위 없다. 겨울에 하얀 눈이 소복이 바닥에 내려앉는 모습을 보는 것도 땅과 가까운 1층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다. 일본의 주택에는 정원에 쌓이는 눈을 감상하기 위한 별도의 미닫이창이 있는데, 1층에서는 그것이 절로 확보되는 셈이다.


이외에도 1층의 장점은 의외로 많다. 우선 대피에 유리한 층이다. 2017년 11월에 발생한 포항 대지진 이후로 한국이 더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피난 경로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락 사고로 인한 부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1층은 아이가 있는 가정에 특히 적합한 층이라는 생각도 든다.


매매가격이나 임대료가 다른 층에 비해 낮은 편이고, 이사를 하거나 가구를 배송시킬 때도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자전거나 유모차, 캠핑용품 등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고, 6개들이 생수 묶음도 주저 없이 배달시킬 수 있다. 고속 엘리베이터라고 해도 출근, 등교 시간이나 재활용 쓰레기 배출일과 겹치면 그 의미가 무색해질 정도로 층마다 서게 되는데, 1층에 살면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을 출근 시간에 따로 계산해 넣지 않아도 된다.


물론 부정할 수 없는 단점도 존재한다. 자동반사처럼 떠오르는 취약점은 보안이다. 1층은 접근이 쉬운 만큼 침입의 표적이 되기도 쉽다. 시시티브이(CCTV)가 잘 갖춰져 있거나 인근에 파출소가 있는 건물 또는 가로등이 있는 건물의 1층은 비교적 안전하니 집을 구할 때 주변을 함께 살펴보기를 바란다. 방범창과 이중 잠금장치를 설치하는 것도 침입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의외로 잠그지 않은 문을 통한 침임 범죄는 1층 이상에서 더 높은 비율로 벌어지기도 한다. 2018년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층보다 3층 이상에 도둑이 더 많이 들었다고 하니 어디서나 방심은 금물.


사생활 침해도 자주 거론되는 단점이다. 거리에 면한 1층은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일 뿐만 아니라 행인과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채광과 답답함 때문에 온종일 커튼을 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요즘은 다기능 방충망과 창에 부착하는 필름 등 사생활 보호용 제품들이 잘 나오고 있다. 날벌레와 미세먼지, 빗물까지 차단이 가능하며, 밖에서는 내부가 잘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 밖을 볼 때는 꽤 선명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설치를 고려해볼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1층이 내키지 않는다면, 1층 같지 않은 1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필로티 구조로 사실상 2층인 1층 같은 집 말이다. 현재 내가 사는 집은 반 층이 올라간 높이에서부터 1층이 시작되는 구조라 외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창문 앞을 가로막는 건물이 없어서 채광도 괜찮다. 바닥 습기 문제도 없다. 오히려 침대 위로 은은하게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가 좋아 자꾸만 그 모습을 캡처하고 싶은 요즘이다. 그래서 맑은 날, 흐린 날, 비 오는 날 할 것 없이 침대가 놓인 방의 모습을 찍는 습관까지 생겼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땅과 가까운 층에서 조금 더 안정감을 느끼거나 사람들이 지나가며 이야기하는 소리, 아이들이 노는 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같은 외부 소음에 민감한 편이 아닌 나에게는 1층이 로열층이다.


매물 후보군을 결정할 때 1층이라고 무조건 제외하지 않는다면, 단점을 커버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1층은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최적의 매물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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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출처  한겨례

발행일  202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