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빌리브 매거진


처음 신세계에서 빌리브 라는 주거 브랜드를 소개할 때 “지금,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져 신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느 건설사의 뉴스레터와는 달리 차별화된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세계의 뉴스레터 'THE VILLIV'에 저의 에세이가 실렸습니다. 별집의 주 고객인 MZ세대가 원하는 주거의 모습은 무엇인지 아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2030세대가 주택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주택난 속에서도 ‘자기다움’을 위한 공간을 찾아 헤매는 MZ세대는 어떤 집을 선호할까? 멋진 편집숍 못지않은 세련되고 감 좋은 셀렉션으로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 전명희 대표가 MZ세대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자기다움’을 사는 세대

5층짜리 저층 아파트에서 추억이 많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온 단지가 내 집인 양 이곳저곳 헤집고 다녔다. 동네 친구들과의 주요 접선 장소는 아파트 2동과 3동 사이에 있는 평행봉. 우리에겐 특별한 장소였기에 나는 그곳에 ‘이삼중철’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2동과 3동 중간에 있는 철봉이라는 다소 식상한 의미의 이름이지만, 공간에 이름표를 달아주니 더욱 애틋한 장소가 되었다. 어린 나에게 탐험할 곳 천지였던 아파트 단지는 내 세상의 전부이자 소우주였다. 그런 소중한 집이 재건축을 이유로 철거되던 날, 정말이지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집이 철거되기 전, 나는 집을 잘 떠나보내기 위한 나름의 애도 방법으로 집 안팎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나만의 공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애착을 갖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을까. 어디를 가도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게 ‘내 공간 만들기’다. 잠깐 지내는 집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만의 규칙대로 세팅하고 난 뒤에야 안정감을 되찾고, 내가 묻어나는 공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삶의 활력을 느낀다. 한때 스스로를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며 만난 수많은 MZ세대 손님을 보며, 집을 통해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유난 떠는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걸 깨달았다. 일선에서 일하며 2030세대가 살고 싶어 하는 집의 기준이 확실히 이전과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정주성은 약해지고 ‘덜어낸’ 집 선호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짧은 계약 기간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계약은 2년 단위가 일반적이다. 작년에 시행된 임대차 3법으로 이제는 임차인이 원하면 최장 4년까지도 거주가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1년 이하의 단기 계약을 선호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취업 준비생과 직장인의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정주의 개념이 약해졌기 때문인데 정주성은 일터와 관련이 깊다.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을 슬기로운 직장 생활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잡호핑job-hopping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연봉을 높이거나 역량 강화를 위한 잦은 이직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렇듯 변화무쌍한 경제 상황과 다양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직장 생활로 인해 한곳에 2년 이상 터를 잡는다는 건 취업 준비생과 직장인에게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또 다른 변화는 풀 옵션의 꽉 찬 집보다 오히려 덜어낸 집을 원한다는 점이다. 편리성 측면에서 본다면 풀 옵션은 여전히 매력적인 조건이다. 몸만 들어오면 될 정도로 가전제품부터 가구까지 모든 게 완벽히 갖춰졌으니 말이다. 다만 집을 나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MZ세대에게 여백이 없는 풀 옵션 집은 답답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다. 요즘은 기본적인 가전제품과 약간의 수납공간만 갖춰져 있다면 어느 정도 자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다양한 디자인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내가 산 가구를 이렇게 저렇게 배치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공간을 더욱 좋아하는 것이다. 간혹 건축가가 좋은 자재로 만든 가구를 제공하거나, 임대인이 집을 기성 가구로 채워 넣는 경우가 있는데, 집을 보러 온 손님으로부터 “이 가구는 빼주실 수 있나요?”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의도야 어쨌든 각 공간의 역할과 쓰임새를 모두 규정해두는 게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집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공간 처방

코로나19도 집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 등 노동과 교육의 기능이 집으로 흡수되면서 한정된 주거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생활 공간과 일하는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오픈형 원룸보다는 내부가 문으로 구획된 1.5룸 이상의 구조와 복층 구조를 찾는 비율이 높아졌다. 작더라도 마음을 환기할 수 있는 외부 공간(발코니, 베란다, 테라스)이 있는 집에 후한 점수를 주기도 한다. 심지어 홈트레이닝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여유 있는 면적을 택한다. 모두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상황을 건강하게 극복하고자 하는 2030세대만의 공간 처방법이다.


내가 만난 MZ세대는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중시하는 이들로, 누군가가 정의한 대로 소비하는 삶을 지양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 자체를 즐긴다. 무엇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게 예쁜 집을 선택하기보다는 '다른' 집에 목말라하고 있다. 다르다고 해서 디자인이 독특할 필요도, 개성이 강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나를 투영시킬 수 있는 담백하면서도 기능적으로 집이 갖춰야 할 기본은 겸비한 그런 집을 갈망한다. 요즘 사용자의 이런 고유한(?) 감각에 건축가와 건축주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사용자의 생활 방식에 알맞은 건축물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축을 전공한 공인중개사로서 욕심을 몇 가지 보태자면 이렇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디자인할 때 원룸의 전용면적이 적어도 6평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침대와 식탁 겸용 테이블을 두고도 방 안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이제 1인 가구는 원룸, 2인 가구는 투룸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1인 가구 비중이 계속 늘고 있지만 원룸은 이미 공실률이 높은 상황이다. 많은 1인 가구가 오픈된 원룸보다는 방이 분리된 구조의 집을 선호한다. 잠자는 공간과 생활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수납 공간을 둘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MZ세대에게는 고급 사양의 바닥재와 가구를 설치한 집보다는 가성비 좋은 자재를 사용해 합리적인 금액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기본만 잘 갖춰져 있으면 나머지는 본인 취향에 맞게 집을 가꿀 수 있다.



전명희 | 건축가가 설계한 주거, 업무, 상업 공간과 재미난 스토리가 담긴 공간을 큐레이팅해 중개하는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한다. 모든 사람이 잠재된 자신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즐거운 공간을 만나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서울 곳곳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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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에디터 백가경 기자

출처  빌리브 매거진



출판  빌리브 매거진

발행일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