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별집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전명희입니다. 제가 올해 8월부터 한겨례 ESC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칼럼을 통해 3주에 한번 집에 대한 상식을 깨는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제 글이 '나를 위한 집'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동산을 중개하는 일이 주업이지만 평일 저녁과 주말에 짬짬이 시간을 내어 주거와 관련한 소모임이나 워크숍을 진행한다. 그렇게 낮에는 공인중개사인 주캐(주캐릭터)로 살다가 퇴근 후면 부캐(부캐릭터)로 변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요즘은 강화에서 청년 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는 팀과 함께 주거 워크숍을 진행하며 새로운 지역살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과 공간에 대해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즐겁기도 하고, 엠제트(MZ)세대의 주거 트렌드를 읽을 수 있어 부캐의 삶이 부동산을 운영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20~30대 청년들이 ‘로컬’의 삶을 꿈꾸고 있고, 단순한 관심을 넘어 본격적으로 이주를 준비하거나 이미 정착한 비율도 꽤 된다. 모든 것이 편리하게 갖춰진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기 사정은 다를지언정,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무엇보다 ‘자기다움’을 중시하는 엠제트세대의 특성이 엿보인다. 이들은 자신만의 색깔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자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정신없이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업이나 내 집 마련과 같은 ‘보통 도시민의 삶’을 위한 생존투쟁을 멈추고 로컬의 삶을 선택하려는 큰 이유다.

40~50대 장년층 중에서도 치열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아 자신을 돌보고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살고자 탈(脫)도시를 꿈꾸는 이들을 쉽게 만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적한 교외에 마당 딸린 단독주택, 그곳에서라면 조금은 느린 속도로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상에 그칠 때가 많다. ‘로컬 라이프’가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음에도 덜컥 이주를 실행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막연한 기대로 이주를 결정하기보다는 내가 혹은 나의 가족이 도시의 삶에 더욱 즐거움을 느끼는 성향인지, 로컬 라이프에 적합한 성향인지, 이주에 대한 선명한 목적을 갖고 있는지 신중히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 가족은 6년 전 경기도 여주에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인 농가주택을 철거하고 전원주택을 새로 지었다. 수중에 있는 돈으로 세컨드하우스를 짓다 보니 비록 그림 같은 전원주택은 아니었지만 마당도 있고, 텃밭도 있고, 창밖으로는 ‘논뷰’가 펼쳐졌다. 복잡한 도시와 달리 시골 동네는 유유자적했다. 하나 로컬 라이프에 대한 벅찬 기대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주말뿐인데도 여주만 가면 지루함에 주리를 트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그런 내 곁엔 항상 좀이 쑤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엄마가 계셨다. 텔레비전을 봐도 재미가 없고, 영화 한편을 봐도 시간은 그대로인 것 같고, 어디 구경을 가려고 해도 동네엔 딱히 마실 나갈 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장소에 따라 흐르는 시간의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때 새삼 깨달았다.


도시에서는 현관문만 열면 다양한 서적들이 빼곡히 꽂힌 도서관, 근사한 인테리어에 맛까지 좋은 커피숍, 최신작을 볼 수 있는 영화관과 미술관, 없는 게 없는 마트와 쇼핑몰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로컬 라이프에서 가장 힘든 건 바로 이런 인프라와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하겠지만 갑자기 환경이 변하니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코로나19로 모든 사람이 강제로 집순이와 집돌이가 되어야 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도시에서의 즐거움과 로컬에서의 즐거움 사이를 적절히 줄타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건 내가 도시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이란 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아직은 도시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음에도 로컬 라이프를 꿈꾸는 지인들에게 세컨드하우스를 추천하거나, 최소 3개월에서 1년 정도 전·월세로 집을 빌리거나 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지역살이 체험을 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고 로컬에서 도시로의 출퇴근이 가능할 거란 믿음을 버리라고 당부한다. 가족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겠다는 굳은 결의도 결국 통근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한다.


이미 지역살이를 결정한 사람이 있다면 이주하기 전에 살게 될 지역을 충분히 탐색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같은 지역이라도 읍내에 있는 집에서 사는 것과 리 단위 마을의 집에서 사는 것이 또 다르다. 걸어서 이용 가능한 편의점이 있고 치킨과 자장면이라도 배달이 되는 읍내에 살 것인지, 좀 더 느슨한 연결이 가능한 자연 친화적인 마을에서 살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삶의 질에 있어 중요하다. 밤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읍내를 추천한다. 아무래도 읍내를 벗어나면 저녁 6시만 돼도 거리에서 사람을 마주하기 어렵고 걷기 힘들 정도로 어둑해진다. 집의 모양도 생각해보자. 로컬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전원주택을 떠올리게 되는데 꽤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보안이 걱정된다면 아파트와 빌라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도시에서의 공동주택과는 다른 느낌이니 선택지에서 제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를 가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법이다. 주어지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로컬 라이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곳에서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될지가 아닐까? 지역을 살필 때 이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새로운 지역에 안착할 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는지 살펴보고,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가게를 운영 중인 곳에 들러 먹고사는 이야기도 나눠보자. 빠른 정착을 위해서는 이주민 비율이 높은 마을을 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찾아보면 지역의 탐색을 돕는 프로그램을 갖춘 곳들이 꽤 있다. 로컬에서의 삶을 어렵게 결정한 만큼 도시로 회귀하지 않으려면 먼저 지역에 안착한 이주민들을 만나 현실적인 고민을 나누고,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어보길 바란다. 로컬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산책하듯 동네를 여행하고, 슬렁슬렁 시간을 보내보라. 후회 없는 로컬 라이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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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출처  한겨례

발행일  2021.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