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별집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전명희입니다. 제가 올해 8월부터 한겨례 ESC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칼럼을 통해 3주에 한번 집에 대한 상식을 깨는 물음을 던져보려 합니다. 제 글이 '나를 위한 집'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동네를 보려거든, 그 동네의 크림빵을 먹어봐야 해.”

만화 원작의 일본 드라마 <기치조지만이 살고 싶은 거리입니까?> 1회에 나오는 대사다. 나는 이 대사에 반해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기치조지는 일본인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로, 드라마는 이곳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다. 쌍둥이 자매는 기치조지에서 살아보고자 부동산을 찾은 손님에게 매번 ‘집’이 아닌 다른 (엉뚱한?) ‘동네’를 추천한다. 다소 동문서답 같은 전개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당장이라도 내가 사는 동네를 산책해야만 할 것 같은 의욕이 불타오르게 된다. 명색이 부동산 드라마인데 ‘집’이 아닌 ‘동네’에 초점을 맞춘 점과 실제 도쿄의 다양한 장소와 풍경을 담담하게 소개하는 점이 개인적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던 드라마다.

예전에는 집의 배경 정도로 인식되었던 동네가 이제는 또 하나의 집이 되었다. 집의 개념이 동네로까지 확장된 것인데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까지도 집의 일부로 본다. 4~5평의 작은 집에서는 충족하기 힘든 기능들을 집 밖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1인 가구에 특히 집의 ‘주변’ 환경은 집의 ‘실내’ 환경 못지않게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한정된 조건 안에서 집을 구하다 보면 동네로까지 집의 영역을 확장시켜 사고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바라보는 비장한 눈빛으로 동네도 함께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만난 손님들이 살고 싶은 동네로 연희동과 망원동, 성수동, 부암동을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동네’와 내가 ‘살아보니 좋은 동네’가 반드시 일치하리란 보장은 없다. 집과 마찬가지로 동네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을 확립해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동네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통근·통학에 소요되는 시간을 따져본다. 우리의 행복지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무시 못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1시간 반씩 걸리던 통근 시간이 어느 날 절반으로 줄었을 때 몇시간을 공짜로 얻은 것 같은 황홀감에 취한 경험이 있다. 저녁까지 먹고 다 치웠는데도 시계를 보니 나는 아직 지하철에 있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직주근접을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회사가 있는 걸 원치 않는다면, 각자 생각하는 직주근접의 허용 범위를 설정해두자. 동네의 후보군을 추리는 데 도움이 된다.


흔히 살고 싶은 동네인지를 파악할 때 공원과 카페, 빵집, 헬스장, 서점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들 위주로 살피기 쉽다. 터치 몇번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이트에서 치안과 같은 안전 정보와 병원, 편의시설 등의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간과되는 중요 요소들도 분명 존재한다. 동네가 풍기는 바이브(분위기)도 그중 하나. 사람의 감정이 쌓이고 모여 건물 속에, 거리에 머무르게 되는데 이런 감정의 냄새가 공기에 응축되어 동네의 바이브를 만든다. 활기가 느껴지는 에너제틱한 바이브가 있는가 하면 차분함이 느껴지는 정적인 바이브도 있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 그 동네에서는 어떤 바이브가 느껴질지 이 기회에 한번 상상해보자.


재작년에 진행한 주거 관련 소모임에서 한 게스트가 뇌리에 깊이 남을 이야기를 꺼냈다. 30대 중반의 1인 가구였던 그는 집을 구할 때 원하는 집의 모양보다는 집 앞(동네)을 갖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집은 가질 수 없는 존재이지만 동네만은 자신이 선택할 여지가 많다는 의미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씁쓸한 감을 지울 수 없었지만 한편으론 몇해 전부터 결이 맞는 동네에 안착해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그가 부럽게 느껴졌다. 오랜 서울살이 끝에 그가 내린 좋은 동네의 조건에는 바로 사람이 있었다. ‘○세권’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입지 환경을 갖춘 동네가 주목받는 요즘 같은 때에 의외의 답변이었다. 귀갓길에 시원한 캔맥주 한잔에 새우깡 한 봉지를 안주 삼아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가 동네에 있다는 것이 굉장한 위안이 된다고 했다. 동네에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무리 많아도 즐거움을 함께 나눌 친구가 없다면 자신에게 그 동네는 그저 쓸쓸한 동네가 될 뿐이라고.

조금은 다른 이유지만 나도 집을 구할 때 집보다는 동네를 더 살피는 편이다. 주로 동네의 풍경을 유심히 관찰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지친 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줄 풍경을 갖고 있는지, 주택과 작은 상점들이 어수선하지 않게 잘 어우러져 길을 걸을 때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거리에서 안정감이 느껴지는지, 단골로 삼고 싶은 빵집과 카페가 있는지 등을 말이다. 어찌 보면 나름의 깐깐한 기준으로 택한 동네를 계속 살고 싶은 동네로, 살아보니 좋은 동네로 만드는 건 내 몫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동네더라도 그곳에 살 때만큼은 동네 부심을 가진 주민이 되려고 노력한다. 동네의 변화에 무감해지지 않으려 부지런히 동네를 배회하고 두리번거린다. 아직 ‘뉴 키드’인지라 가게 사장님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의 사이는 아니지만 나름 내적 친밀감을 형성했다고 믿으며, 요즘은 이 동네의 토박이라도 된 양 자신감 넘치는 포스로 가게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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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명희

출처  한겨례

발행일  2021.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