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그니처 라이브러리(Signature Library)>는 한화손해보험의 라이프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여는 이야기 : 일상에 균형을 더하는 콘텐츠 라이브러리"라는 모토 하에 여성을 타겟으로 웰니스 라이프와 성장을 돕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있어요. 이번 작은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6화에는 별집이 등장합니다. 인터뷰 때 에티터님과 캐미가 좋다고 느꼈는데 정말 멋지게 소개해 주셨어요! 신윤영 에디터님, 감사합니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짝 웃는 모습을 기막히게 포착하신 사진작가님에게도 감사드려요.
-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대신 나서주길 바라지만, 어떤 이들은 세상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접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다. ‘작은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시리즈에서는 이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 대한민국 젊은 세대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아파트를 살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도 불사하겠다는 사람들과 몰개성한 아파트에서만은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공존한다. 그리고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이하 ‘별집’) 전명희 대표는 이 둘 중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한다.
별집은 건축가가 설계한 집과 독특한 구조의 상업 공간을 소개하고 중개하는 플랫폼이다. 부동산이라면 으레 하는 것들을 별집은 하지 않는다. 사무실 입구에 인근 인기 매물의 평수와 가격을 붙여 놓는 대신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한 전국의 특이한 공간을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한다. 목 좋은 곳에 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대신 꼬불꼬불한 명륜동 골목 안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당신이 원하는 집을 기꺼이 찾아주지만, 부동산 투자 상담은 하지 않는다. 별집이 소개하는 매물의 기준은 단 하나, ‘그 공간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사는 공간이 당신을 말해 준다. 좋은 공간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공간이 좋아서 건축을 공부했고, 집을 짓기보다는 찾고 소개하는 게 좋다는 전명희 대표는 ‘공간 감수성’이야말로 21세기를 사는 성인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이라고 말한다.
-
석사까지 마친 건축학도가 부동산 사무실을 차린 이유
Q 별집은 위치부터 비범해요.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골목 안에 사무실을 연 이유가 있을까요?
지나가던 사람이 호기심에 불쑥 들어오는 일을 최대한 줄이려고요.(웃음) 위치가 아니라 아이템 기반의 부동산이다 보니 소개하는 매물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사전에 매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Q 독특한 공간만 골라서 소개하는 게 직업인 사람은 왠지 남다른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아요. 어떤 집에서 자라셨나요?
예전에 <나다운 집 찾기>라는 책을 쓰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웃음) 마음 같아선 유명 건축가가 지은 단독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저는 ‘아파트 키즈’예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쭉 아파트에서만 살았죠.
굳이 하나를 꼽자면,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특히 엄마. 저희 엄마는 예전부터 집을 가만두지 못하셨어요. 틈만 나면 집 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셨는데, 한번은 피아노를 거실에서 방으로 혼자 옮기시는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했던 적이 있어요. 어른이 된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Q 학부에서는 설계, 대학원에서는 건설사업관리를 전공했는데, 좋아하는 공간을 직접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학부 때 설계를 하면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건물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짓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기에 대학원에서 건설사업관리를 전공했지만, 막상 대학원에 가보니 학술적으로 국내에서는 시기상조인 데다가 졸업 후 진로가 박사과정을 밟거나 건설 회사에 취직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건축 일은 계속하고 싶고, 아는 것도 건축뿐인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죠. 그러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도쿄 R부동산에 대해 알게 되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
시행착오 속에 피어난 별집의 철학
Q 도쿄 R부동산 간담회에서 큰 감동을 받은 나머지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고요?
서른한 살 때인데, 지금 생각하면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거의 끝날 무렵이라 또다시 진로를 고민하며 이런저런 간담회를 기웃거리던 중이었어요. 제가 도쿄 R부동산에 매료된 건 ‘건축가들이 만든 재미있는 부동산’이라는 콘셉트 때문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부동산 중개업에 대한 제 인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거든요. 왠지 투자를 빌미로 헛된 영업을 하는 곳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도쿄 R부동산은 죽어가는 거리의 숨은 부동산적 가치를 발견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일대를 되살리는 일을 하더라고요. 낡고 오래된 건물을 건축가들이 고쳐 장점을 부각하고, 지역 명소로 만들어 임대를 활성화하는 거죠. 건물을 짓는 것만 건축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간담회가 끝나고 4개월이 지나도 잊히기는커녕 자꾸만 생각났어요. 일단 대표님을 만나서 뭐라도 좀 물어보고 싶었죠. 간담회 통역하셨던 분을 통해 대표님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았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흔쾌히 오라고 하시더군요. 하필이면 도쿄에 10년 만에 폭설이 내렸는데 다리에 깁스까지 한 상태로 일본에 갔어요.
Q 그때의 만남이 현재의 별집이 생기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나요?
현실적인 조언을 들었어요. 대표님이 저를 만나자마자 “I’m not rich”라고 하셨어요. 부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부동산업계에 뛰어드는 사람이 적지 않았나 봐요.
영어도 일본어도 잘 못하는 제가 한 시간 남짓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파악한 요점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일반적인 부동산 시장에서 짧게라도 실무를 경험해 보라는 거였어요. 국내 부동산 중개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먼저 배워야 새로운 콘셉트를 도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무조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충고였죠.
그길로 귀국해서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사무실에 취직했어요. 2년 남짓 일하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확인했어요.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들었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고 싶었죠. 그게 별집의 시작이에요.
Q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콘셉트로 개업하는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싼 수업료를 냈죠. 사업을 시작한 건 2019년 7월이지만 별집이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연 건 2020년 9월이에요. 시작할 때만 해도 ‘딱 2년만 해보고 수익이 전혀 나지 않으면 포기하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벌써 6년째네요.
Q 별집은 직관적이면서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이름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처음에 구상한 이름은 ‘별집부록’이었어요. 사람들에게 ‘별별 집’을 다 소개해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건축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죠. 그런데 찾아보니 ‘별책부록’이라는 서점이 있더라고요. 부동산 사무실에서 업무 전화를 받을 때 보통 “OO 공인중개사입니다”라고 응대하는 걸 고려해 이름은 두 글자, 길어야 세 글자로 정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나온 이름이 ‘별집’이에요.
Q 일반적으로 부동산은 사무실이 위치한 동네의 매물을 집중적으로 중개하는 방식인데, 별집은 지역에 관계없이 별집의 콘셉트에 부합하는 매물을 소개하고 있어요. 실무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많아요. 대부분 매물과 매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발생하는 어려움이죠. 일단 제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너무 멀어요. 둘째는 집을 보러 다니는 분들이 특정 동네의 집을 소개받으면 간 김에 근처의 다른 집들도 보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둘 다 별집이 아이템 기반 중개를 고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고, 후자의 경우 여전히 해결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제가 축지법을 배우지 않는 이상 언제나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니 그냥 마음을 바꿔먹었어요. 이동 시간이 휴식 시간이라 생각하고 평소 바빠서 미뤄뒀던 팟캐스트나 음악을 듣고 책을 읽어요. 스마트폰으로 일을 할 때도 많고요.
-
나다운 집, 별처럼 반짝이는 집을 찾는 여정
Q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게 하는 별집의 매물이 궁금해지네요. 중개하는 매물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근사한 기준 같은 건 없어요. 있다면 딱 하나, ‘다양성이 있는 공간’이에요. 별집의 모든 매물은 제가 직접 가보고 소개 콘텐츠를 작성해요. 이 매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포인트가 하나라도 있어야 하죠. 작은 원룸이라도 창밖 풍경이 멋있다거나 복도식 구조가 독특하다는 등 개성 있는 포인트가 있으면 중개해요.
Q 소개하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과정도 궁금해요.
별집을 열고 2년 반 정도는 매일 건축가 리스트를 뽑아서 그들의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이메일, 연락처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상황을 체크했어요. 요즘은 건축가들도 개인 채널에 본인이 설계하는 공간을 홍보하거든요. 인스타그램에 과정이 올라오니 언제쯤 건물이 완공될지 추측할 수 있고, 중개가 가능한 타이밍을 예상해서 연락하는 거죠.
SNS에 건축물의 위치까지는 노출하지 않으니까, 정확한 주소를 알고 싶으면 사진을 보면서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해야 해요. 교회, 미용실, 학원 같은 게 보이면 그걸 근거로 대략의 주소를 추측하고, 등기부등본으로 소유자의 주소를 확인해요. 그런 식으로 건축가와 건축주에게 2년 넘게 꾸준히 연락하면서 별집을 홍보했어요. 처음에는 반응이 거의 없었는데, 거짓말처럼 2년 반이 지난 시점부터 더 이상 리스트를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됐죠.
Q 단단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건가요?
끈기 있게 한 게 효과를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매물 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건축가에게는 본인이 설계한 건물을 한층 매력적으로 소개하는 별집의 콘텐츠로 어필했어요. 일반 부동산에 의뢰하면 특색 없는 사진이 나가지만, 저희는 특이한 건물만 따로 큐레이팅해서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소개하니까요. 건축가 입장에서도 본인이 설계한 상가 건물이나 다세대주택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건축주에게 면이 서고요.
건물주에게는 별집의 주요 고객이 전부 공간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어필했어요. 공들여 지은 이 공간의 가치를 아는 고객을 저희가 모시고 오겠다는 의미죠. 별집에만 매물을 싣는 것도 아니고, 인근 부동산에 모두 맡기는 건데 저희는 별도로 사진을 찍고 소개 글도 쓰잖아요.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죠.
Q 실제로 별집 홈페이지의 매물 소개는 웬만한 건축 에세이 버금가는 완성도를 자랑해요. 직접 중개도 하고 사진 찍고 기사 같은 소개 글도 쓰고···. 잠은 언제 주무시나요?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그래서 돈은 제대로 벌고 있어?”예요.(웃음) 다른 부동산보다 중개 보수를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제가 이것저것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보이나 봐요. 그런데 사실 큰돈은 아니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은 벌거든요. ‘큰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낮에는 외근을 해야 하고 전화나 문자가 계속 오기 때문에 콘텐츠 작업은 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해요.
Q 첫 거래 매물,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세요?
그럼요. 그때만 해도 별집의 콘셉트를 설명했을 때 사람들이 이해할지 자신이 없었어요. 녹사평역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에이라운드 건축’의 박창현 소장님이 사업적인 마인드가 남다른데, 저희 콘셉트를 듣더니 건축주를 소개해 주셨어요.
만나보니 건축주도 평범한 분이 아니었어요. 전농동에 ‘유일주택’이라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목욕탕 건물을 다세대주택으로 새로 지은 케이스예요. 저희의 첫 거래가 이 유일주택이었고, 당시엔 건축주도 첫 주택에 첫 임대, 저도 사업 시작 후 첫 거래여서 서로 의지를 많이 했죠. 그 이후로 유일주택은 별집에서 전속으로 중개하고 있어요.
Q 그런 식으로 거래처가 된 경우가 많나요?
동숭동에 있는 건물 ‘조은사랑채’의 임차인도 그런 경우예요.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관련 일을 하는 분이라 기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으세요. 죽기 전에 최대한 다양한 주거 모델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어서, 코로나19 시국으로 에어비앤비 요금이 잠깐 떨어졌을 때 6개월 동안 에어비앤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사신 적도 있대요. 동숭동 집은 그 과정을 거치며 찾은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었던 거죠. 현재는 조은사랑채도 별집에서 전속 거래를 하고 있어요.
Q 매물이 지방에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중개하세요?
언젠가부터 지방에서도 중개해 달라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서울·경기권이 아니면 고사했어요. 그런데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 동네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매물이니까 저에게까지 연락을 주셨을 텐데 계속 거절하기도 죄송하고, 공간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제가 해보고 싶은 경우도 있었어요.
대단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현재 사용하는 절충안이 있긴 해요. 처음엔 무조건 제가 직접 가서 매물을 파악하고, 이후 집을 보러 오시는 분이 생기면 건축주나 소유자가 문을 열고 집을 보여 주시는 거예요. 연락하신 분이 진짜 사려고 보는 것인지 제가 필터링을 하고, 간단하게 상담을 진행한 다음 건축주는 문만 열어주는 식이죠.
-
그대들은 어디서 살 것인가
Q 별집의 주요 고객은 어떤 분들인가요?
처음 시작했을 때 타깃은 1인 가구였어요. 그래서 매물도 대부분 원룸, 1.5룸이었죠. 저희의 업력이 길어지면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었던 고객들의 중개 니즈도 다양해졌어요. 원룸을 원하던 분이 결혼하고 두 명 이상 살 수 있는 집을 찾거나 예전에 거래한 건축가, 건축주가 상가를 중개해 달라고 연락이 오곤 해요.
요즘은 스리룸이나 상가도 중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많이 찾는 건 1~2인 가구 규모의 집이에요. 집을 구하는 분은 20대와 30대가 많고, 매도하는 분은 40~50대 중심이고요.
Q ‘매력적인 콘셉트’와 ‘사업적인 수익’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계신 것 같아요. 비결이 있나요?
저는 별집을 시작할 때부터 제가 좋아하는 일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구분했어요. 제가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좀 더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건축에 대해 더 관심을 갖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일을 하면서 그 목표를 조금이나마 이룬 것 같아 보람을 느낄 때도 많지만, 사실 그런 순간은 정말 찰나예요. 그 찰나를 위해서 많은 수고와 어려움을 감수하는 거고요.
사업적으로는 여전히 안정화됐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운 상태예요. 부동산은 정부 정책과 그에 따른 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수가 생겨요. 처음엔 그런 걸 잘 몰라서 수입이 줄어들면 굉장히 우울해지곤 했어요.
몇 년 하다 보니 수익 그래프도 일정한 패턴이 있더라고요. 내가 이 일을 하는 한 이 그래프는 감당해야 한다고 마음먹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개업 5년 차가 지나면서 예전보다 수요층이 안정된 것도 있고요.
Q ‘좋은 집’을 찾는 대표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그 공간을 보러 간 사람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네요. 제 경우 이렇게 말하면 조금 우습지만,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집에 들어간 순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집을 좋아해요. 그리고 집을 보러 갈 때 기대를 많이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5분, 길어야 10분 정도 짧게 보고 나오는 건데, 그 사이에 엄청 자세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죠. 그래서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원하는 조건을 리스트업하고 그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볼 것을 추천해요.
예를 들어 ‘창밖으로 녹색 풍경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집이어야 한다’거나 ‘발코니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식으로요. 위에서부터 세 개까지 만족시키는 집도 무척 드물거든요. 그런 기준이 없으면 들어가는 순간 마음에 안 드는 점부터 눈에 띄고, 그러면 결정하기 어려워져요.
Q 지금 사는 집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요.
맥락상 ‘아무개 건축가님이 설계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오빠의 지인이 사시던 집에서 살고 있어요. 30년 넘은 빌라예요. 사시던 분이 제주도로 이주하면서 집을 비우게 됐는데, 마침 제가 이사해야 하는 시점과 잘 맞았어요.
임대용으로 지은 낡은 빌라에서도 나다운 스타일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제 책에도 사진을 실었어요. 저에게 중요한 기준은 ‘돌출창이 있어야 한다’였는데, 이 집이 딱 그래요. 창밖으로 하늘이 보이고, 마주 보는 담벼락은 초등학교죠. 조경 관리를 엄청 열심히 하셔서 집 안에서도 초록 풍경이 잘 보여요.
제가 식물 중 유일하게 알아보고 또 좋아하는 게 목련인데, 집 보러 갔을 때 마당에 있는 나무 세 그루 중 하나에 목련꽃이 피어 있었어요. 아까 말한 ‘느낌’을 그때 받았죠. ‘아, 이 집은 나와 잘 맞겠구나!’
Q 책에도 나오는 ‘공간 감수성’이란 표현은 직접 만든 단어인가요?
맞아요. 요즘 온갖 단어에 ‘감수성’을 붙여서 쓰는데 ‘공간 감수성’이라는 말은 딱히 없더라고요. 제가 정리한 공간 감수성의 정의는 ‘나와 공간의 관계를 인지하는 능력’이에요. 이 공간이 좋은지, 좋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채는 능력이죠.
결국 모든 건 관심에서 비롯돼요. 공간에 관심을 가지면 새삼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돼요. 시시각각 바뀌는 그림자와 빛의 위치나 TV 소리에 묻혀서 안 들리던 새소리를 의식하게 되죠. 저는 집에 있을 때 대체로 창문을 다 열어놓고 조용히 있어요. 바람에 낙엽이 쓸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는 걸 이 집에 살면서 처음 알게 됐어요.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이 재잘대는 소리에 내가 실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고요.
Q 공간 감수성이 생기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겠네요.
그렇죠.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을 때 자존감이 올라가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공간에 살면 인생의 소소한 순간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공간이 삶 자체를 바꾸는 거죠.
Q 별집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명확해요. 별집의 콘셉트를 잘 유지하면서 그만두는 순간까지 이 일을 즐겁게 하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좋은 공간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부동산을 중개하는 것뿐 아니라 공간을 소개하는 사람으로 자리 잡고 싶어요.
전명희 별집 부동산 대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수록 사고의 지평도 넓어진다고 믿는 온라인 기반 부동산 큐레이션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공간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애정을 동력으로 전국의 독특한 공간과 그 공간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한다. 공간을 통해 많은 이들의 삶이 행복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 기사 원문 바로보기
글/사진 시그니처 라이브러리 에디터/사진작가
발행 시그니처 라이브러리
발행일 2025.9.19
<시그니처 라이브러리(Signature Library)>는 한화손해보험의 라이프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여는 이야기 : 일상에 균형을 더하는 콘텐츠 라이브러리"라는 모토 하에 여성을 타겟으로 웰니스 라이프와 성장을 돕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있어요. 이번 작은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6화에는 별집이 등장합니다. 인터뷰 때 에티터님과 캐미가 좋다고 느꼈는데 정말 멋지게 소개해 주셨어요! 신윤영 에디터님, 감사합니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짝 웃는 모습을 기막히게 포착하신 사진작가님에게도 감사드려요.
지금 대한민국 젊은 세대가 ‘집’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아파트를 살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도 불사하겠다는 사람들과 몰개성한 아파트에서만은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공존한다. 그리고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이하 ‘별집’) 전명희 대표는 이 둘 중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한다.
별집은 건축가가 설계한 집과 독특한 구조의 상업 공간을 소개하고 중개하는 플랫폼이다. 부동산이라면 으레 하는 것들을 별집은 하지 않는다. 사무실 입구에 인근 인기 매물의 평수와 가격을 붙여 놓는 대신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한 전국의 특이한 공간을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한다. 목 좋은 곳에 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대신 꼬불꼬불한 명륜동 골목 안에 고요히 자리하고 있다. 당신이 원하는 집을 기꺼이 찾아주지만, 부동산 투자 상담은 하지 않는다. 별집이 소개하는 매물의 기준은 단 하나, ‘그 공간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사는 공간이 당신을 말해 준다. 좋은 공간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공간이 좋아서 건축을 공부했고, 집을 짓기보다는 찾고 소개하는 게 좋다는 전명희 대표는 ‘공간 감수성’이야말로 21세기를 사는 성인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이라고 말한다.
-
석사까지 마친 건축학도가 부동산 사무실을 차린 이유
Q 별집은 위치부터 비범해요.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골목 안에 사무실을 연 이유가 있을까요?
지나가던 사람이 호기심에 불쑥 들어오는 일을 최대한 줄이려고요.(웃음) 위치가 아니라 아이템 기반의 부동산이다 보니 소개하는 매물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사전에 매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Q 독특한 공간만 골라서 소개하는 게 직업인 사람은 왠지 남다른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아요. 어떤 집에서 자라셨나요?
예전에 <나다운 집 찾기>라는 책을 쓰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웃음) 마음 같아선 유명 건축가가 지은 단독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저는 ‘아파트 키즈’예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쭉 아파트에서만 살았죠.
굳이 하나를 꼽자면,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특히 엄마. 저희 엄마는 예전부터 집을 가만두지 못하셨어요. 틈만 나면 집 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셨는데, 한번은 피아노를 거실에서 방으로 혼자 옮기시는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했던 적이 있어요. 어른이 된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Q 학부에서는 설계, 대학원에서는 건설사업관리를 전공했는데, 좋아하는 공간을 직접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학부 때 설계를 하면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건물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짓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기에 대학원에서 건설사업관리를 전공했지만, 막상 대학원에 가보니 학술적으로 국내에서는 시기상조인 데다가 졸업 후 진로가 박사과정을 밟거나 건설 회사에 취직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건축 일은 계속하고 싶고, 아는 것도 건축뿐인데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죠. 그러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합류하고 도쿄 R부동산에 대해 알게 되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
시행착오 속에 피어난 별집의 철학
Q 도쿄 R부동산 간담회에서 큰 감동을 받은 나머지 대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직접 찾아가기까지 했다고요?
서른한 살 때인데, 지금 생각하면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거의 끝날 무렵이라 또다시 진로를 고민하며 이런저런 간담회를 기웃거리던 중이었어요. 제가 도쿄 R부동산에 매료된 건 ‘건축가들이 만든 재미있는 부동산’이라는 콘셉트 때문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부동산 중개업에 대한 제 인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거든요. 왠지 투자를 빌미로 헛된 영업을 하는 곳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도쿄 R부동산은 죽어가는 거리의 숨은 부동산적 가치를 발견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일대를 되살리는 일을 하더라고요. 낡고 오래된 건물을 건축가들이 고쳐 장점을 부각하고, 지역 명소로 만들어 임대를 활성화하는 거죠. 건물을 짓는 것만 건축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간담회가 끝나고 4개월이 지나도 잊히기는커녕 자꾸만 생각났어요. 일단 대표님을 만나서 뭐라도 좀 물어보고 싶었죠. 간담회 통역하셨던 분을 통해 대표님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았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흔쾌히 오라고 하시더군요. 하필이면 도쿄에 10년 만에 폭설이 내렸는데 다리에 깁스까지 한 상태로 일본에 갔어요.
Q 그때의 만남이 현재의 별집이 생기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나요?
현실적인 조언을 들었어요. 대표님이 저를 만나자마자 “I’m not rich”라고 하셨어요. 부자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부동산업계에 뛰어드는 사람이 적지 않았나 봐요.
영어도 일본어도 잘 못하는 제가 한 시간 남짓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파악한 요점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일반적인 부동산 시장에서 짧게라도 실무를 경험해 보라는 거였어요. 국내 부동산 중개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먼저 배워야 새로운 콘셉트를 도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무조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충고였죠.
그길로 귀국해서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사무실에 취직했어요. 2년 남짓 일하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확인했어요.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들었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고 싶었죠. 그게 별집의 시작이에요.
Q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콘셉트로 개업하는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비싼 수업료를 냈죠. 사업을 시작한 건 2019년 7월이지만 별집이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연 건 2020년 9월이에요. 시작할 때만 해도 ‘딱 2년만 해보고 수익이 전혀 나지 않으면 포기하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벌써 6년째네요.
Q 별집은 직관적이면서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이름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처음에 구상한 이름은 ‘별집부록’이었어요. 사람들에게 ‘별별 집’을 다 소개해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건축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죠. 그런데 찾아보니 ‘별책부록’이라는 서점이 있더라고요. 부동산 사무실에서 업무 전화를 받을 때 보통 “OO 공인중개사입니다”라고 응대하는 걸 고려해 이름은 두 글자, 길어야 세 글자로 정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나온 이름이 ‘별집’이에요.
Q 일반적으로 부동산은 사무실이 위치한 동네의 매물을 집중적으로 중개하는 방식인데, 별집은 지역에 관계없이 별집의 콘셉트에 부합하는 매물을 소개하고 있어요. 실무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많아요. 대부분 매물과 매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발생하는 어려움이죠. 일단 제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너무 멀어요. 둘째는 집을 보러 다니는 분들이 특정 동네의 집을 소개받으면 간 김에 근처의 다른 집들도 보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둘 다 별집이 아이템 기반 중개를 고수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고, 후자의 경우 여전히 해결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제가 축지법을 배우지 않는 이상 언제나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니 그냥 마음을 바꿔먹었어요. 이동 시간이 휴식 시간이라 생각하고 평소 바빠서 미뤄뒀던 팟캐스트나 음악을 듣고 책을 읽어요. 스마트폰으로 일을 할 때도 많고요.
-
나다운 집, 별처럼 반짝이는 집을 찾는 여정
Q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게 하는 별집의 매물이 궁금해지네요. 중개하는 매물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근사한 기준 같은 건 없어요. 있다면 딱 하나, ‘다양성이 있는 공간’이에요. 별집의 모든 매물은 제가 직접 가보고 소개 콘텐츠를 작성해요. 이 매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포인트가 하나라도 있어야 하죠. 작은 원룸이라도 창밖 풍경이 멋있다거나 복도식 구조가 독특하다는 등 개성 있는 포인트가 있으면 중개해요.
Q 소개하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과정도 궁금해요.
별집을 열고 2년 반 정도는 매일 건축가 리스트를 뽑아서 그들의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이메일, 연락처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상황을 체크했어요. 요즘은 건축가들도 개인 채널에 본인이 설계하는 공간을 홍보하거든요. 인스타그램에 과정이 올라오니 언제쯤 건물이 완공될지 추측할 수 있고, 중개가 가능한 타이밍을 예상해서 연락하는 거죠.
SNS에 건축물의 위치까지는 노출하지 않으니까, 정확한 주소를 알고 싶으면 사진을 보면서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해야 해요. 교회, 미용실, 학원 같은 게 보이면 그걸 근거로 대략의 주소를 추측하고, 등기부등본으로 소유자의 주소를 확인해요. 그런 식으로 건축가와 건축주에게 2년 넘게 꾸준히 연락하면서 별집을 홍보했어요. 처음에는 반응이 거의 없었는데, 거짓말처럼 2년 반이 지난 시점부터 더 이상 리스트를 업데이트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 됐죠.
Q 단단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건가요?
끈기 있게 한 게 효과를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매물 수를 유지하고 있어요. 건축가에게는 본인이 설계한 건물을 한층 매력적으로 소개하는 별집의 콘텐츠로 어필했어요. 일반 부동산에 의뢰하면 특색 없는 사진이 나가지만, 저희는 특이한 건물만 따로 큐레이팅해서 시각적으로 보기 좋게 소개하니까요. 건축가 입장에서도 본인이 설계한 상가 건물이나 다세대주택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건축주에게 면이 서고요.
건물주에게는 별집의 주요 고객이 전부 공간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어필했어요. 공들여 지은 이 공간의 가치를 아는 고객을 저희가 모시고 오겠다는 의미죠. 별집에만 매물을 싣는 것도 아니고, 인근 부동산에 모두 맡기는 건데 저희는 별도로 사진을 찍고 소개 글도 쓰잖아요.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죠.
Q 실제로 별집 홈페이지의 매물 소개는 웬만한 건축 에세이 버금가는 완성도를 자랑해요. 직접 중개도 하고 사진 찍고 기사 같은 소개 글도 쓰고···. 잠은 언제 주무시나요?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그래서 돈은 제대로 벌고 있어?”예요.(웃음) 다른 부동산보다 중개 보수를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제가 이것저것 하는 일이 너무 많아 보이나 봐요. 그런데 사실 큰돈은 아니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은 벌거든요. ‘큰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낮에는 외근을 해야 하고 전화나 문자가 계속 오기 때문에 콘텐츠 작업은 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해요.
Q 첫 거래 매물,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세요?
그럼요. 그때만 해도 별집의 콘셉트를 설명했을 때 사람들이 이해할지 자신이 없었어요. 녹사평역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게 된 ‘에이라운드 건축’의 박창현 소장님이 사업적인 마인드가 남다른데, 저희 콘셉트를 듣더니 건축주를 소개해 주셨어요.
만나보니 건축주도 평범한 분이 아니었어요. 전농동에 ‘유일주택’이라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목욕탕 건물을 다세대주택으로 새로 지은 케이스예요. 저희의 첫 거래가 이 유일주택이었고, 당시엔 건축주도 첫 주택에 첫 임대, 저도 사업 시작 후 첫 거래여서 서로 의지를 많이 했죠. 그 이후로 유일주택은 별집에서 전속으로 중개하고 있어요.
Q 그런 식으로 거래처가 된 경우가 많나요?
동숭동에 있는 건물 ‘조은사랑채’의 임차인도 그런 경우예요.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관련 일을 하는 분이라 기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으세요. 죽기 전에 최대한 다양한 주거 모델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어서, 코로나19 시국으로 에어비앤비 요금이 잠깐 떨어졌을 때 6개월 동안 에어비앤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사신 적도 있대요. 동숭동 집은 그 과정을 거치며 찾은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었던 거죠. 현재는 조은사랑채도 별집에서 전속 거래를 하고 있어요.
Q 매물이 지방에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중개하세요?
언젠가부터 지방에서도 중개해 달라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서울·경기권이 아니면 고사했어요. 그런데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 동네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매물이니까 저에게까지 연락을 주셨을 텐데 계속 거절하기도 죄송하고, 공간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제가 해보고 싶은 경우도 있었어요.
대단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현재 사용하는 절충안이 있긴 해요. 처음엔 무조건 제가 직접 가서 매물을 파악하고, 이후 집을 보러 오시는 분이 생기면 건축주나 소유자가 문을 열고 집을 보여 주시는 거예요. 연락하신 분이 진짜 사려고 보는 것인지 제가 필터링을 하고, 간단하게 상담을 진행한 다음 건축주는 문만 열어주는 식이죠.
-
그대들은 어디서 살 것인가
Q 별집의 주요 고객은 어떤 분들인가요?
처음 시작했을 때 타깃은 1인 가구였어요. 그래서 매물도 대부분 원룸, 1.5룸이었죠. 저희의 업력이 길어지면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었던 고객들의 중개 니즈도 다양해졌어요. 원룸을 원하던 분이 결혼하고 두 명 이상 살 수 있는 집을 찾거나 예전에 거래한 건축가, 건축주가 상가를 중개해 달라고 연락이 오곤 해요.
요즘은 스리룸이나 상가도 중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장 많이 찾는 건 1~2인 가구 규모의 집이에요. 집을 구하는 분은 20대와 30대가 많고, 매도하는 분은 40~50대 중심이고요.
Q ‘매력적인 콘셉트’와 ‘사업적인 수익’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계신 것 같아요. 비결이 있나요?
저는 별집을 시작할 때부터 제가 좋아하는 일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구분했어요. 제가 이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좀 더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건축에 대해 더 관심을 갖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일을 하면서 그 목표를 조금이나마 이룬 것 같아 보람을 느낄 때도 많지만, 사실 그런 순간은 정말 찰나예요. 그 찰나를 위해서 많은 수고와 어려움을 감수하는 거고요.
사업적으로는 여전히 안정화됐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운 상태예요. 부동산은 정부 정책과 그에 따른 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수가 생겨요. 처음엔 그런 걸 잘 몰라서 수입이 줄어들면 굉장히 우울해지곤 했어요.
몇 년 하다 보니 수익 그래프도 일정한 패턴이 있더라고요. 내가 이 일을 하는 한 이 그래프는 감당해야 한다고 마음먹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개업 5년 차가 지나면서 예전보다 수요층이 안정된 것도 있고요.
Q ‘좋은 집’을 찾는 대표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그 공간을 보러 간 사람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네요. 제 경우 이렇게 말하면 조금 우습지만,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집에 들어간 순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집을 좋아해요. 그리고 집을 보러 갈 때 기대를 많이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5분, 길어야 10분 정도 짧게 보고 나오는 건데, 그 사이에 엄청 자세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죠. 그래서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원하는 조건을 리스트업하고 그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볼 것을 추천해요.
예를 들어 ‘창밖으로 녹색 풍경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집이어야 한다’거나 ‘발코니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식으로요. 위에서부터 세 개까지 만족시키는 집도 무척 드물거든요. 그런 기준이 없으면 들어가는 순간 마음에 안 드는 점부터 눈에 띄고, 그러면 결정하기 어려워져요.
Q 지금 사는 집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요.
맥락상 ‘아무개 건축가님이 설계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오빠의 지인이 사시던 집에서 살고 있어요. 30년 넘은 빌라예요. 사시던 분이 제주도로 이주하면서 집을 비우게 됐는데, 마침 제가 이사해야 하는 시점과 잘 맞았어요.
임대용으로 지은 낡은 빌라에서도 나다운 스타일로 살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제 책에도 사진을 실었어요. 저에게 중요한 기준은 ‘돌출창이 있어야 한다’였는데, 이 집이 딱 그래요. 창밖으로 하늘이 보이고, 마주 보는 담벼락은 초등학교죠. 조경 관리를 엄청 열심히 하셔서 집 안에서도 초록 풍경이 잘 보여요.
제가 식물 중 유일하게 알아보고 또 좋아하는 게 목련인데, 집 보러 갔을 때 마당에 있는 나무 세 그루 중 하나에 목련꽃이 피어 있었어요. 아까 말한 ‘느낌’을 그때 받았죠. ‘아, 이 집은 나와 잘 맞겠구나!’
Q 책에도 나오는 ‘공간 감수성’이란 표현은 직접 만든 단어인가요?
맞아요. 요즘 온갖 단어에 ‘감수성’을 붙여서 쓰는데 ‘공간 감수성’이라는 말은 딱히 없더라고요. 제가 정리한 공간 감수성의 정의는 ‘나와 공간의 관계를 인지하는 능력’이에요. 이 공간이 좋은지, 좋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채는 능력이죠.
결국 모든 건 관심에서 비롯돼요. 공간에 관심을 가지면 새삼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게 돼요. 시시각각 바뀌는 그림자와 빛의 위치나 TV 소리에 묻혀서 안 들리던 새소리를 의식하게 되죠. 저는 집에 있을 때 대체로 창문을 다 열어놓고 조용히 있어요. 바람에 낙엽이 쓸리는 소리가 빗소리 같다는 걸 이 집에 살면서 처음 알게 됐어요.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이 재잘대는 소리에 내가 실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고요.
Q 공간 감수성이 생기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겠네요.
그렇죠.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을 때 자존감이 올라가요.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공간에 살면 인생의 소소한 순간에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돼요. 공간이 삶 자체를 바꾸는 거죠.
Q 별집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명확해요. 별집의 콘셉트를 잘 유지하면서 그만두는 순간까지 이 일을 즐겁게 하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좋은 공간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부동산을 중개하는 것뿐 아니라 공간을 소개하는 사람으로 자리 잡고 싶어요.
전명희 별집 부동산 대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수록 사고의 지평도 넓어진다고 믿는 온라인 기반 부동산 큐레이션 ‘별집’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공간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애정을 동력으로 전국의 독특한 공간과 그 공간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한다. 공간을 통해 많은 이들의 삶이 행복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 기사 원문 바로보기
글/사진 시그니처 라이브러리 에디터/사진작가
발행 시그니처 라이브러리
발행일 2025.9.19